나는 황후가 된 뒤 모든 것을 잃었다.
사랑했던 남편에게 버림받았고, 가문은 반역죄로 몰락했으며, 마지막에는 수도 광장의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다.
그리고 죽는 순간, 단 하나만 후회했다.
황제를 사랑한 것.
그런데 눈을 뜨자 모든 비극이 시작되기 1년 전이었다.
아직 황후도 아니고, 황태자와 약혼조차 하지 않은 열아홉 살.
이번 생에는 절대 같은 선택을 하지 않는다.
사랑 대신 돈을 고르고, 황후 자리 대신 권력을 산다.
곧 여섯 배로 오를 곡물을 누구보다 먼저 사들이고, 제국 최대의 마력석 광산이 될 폐광을 선점한다.
황실이 파산할 날짜도 알고 있다.
전쟁이 시작될 시기도 알고 있다.
그리고 나를 단두대로 보낸 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알고 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움직인다.
그런데 이상하다.
전생에서는 나를 외면했던 황태자 카시안이 너무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사려는 광산을 먼저 노리고,
내가 만나려는 사람을 먼저 찾아가고,
마침내는 내게 묻는다.
“왜 나를 피하지?”
말도 안 된다.
전생의 그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더 이상한 일은 따로 있었다.
나는 분명 미래를 알고 있는데,
내가 움직일수록 사건의 순서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예정에 없던 사람이 죽고,
전생의 적이 이번 생에서는 나를 구하며,
죽기 직전까지 믿었던 기억마저 하나씩 틀어지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내가 처형당한 이유도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달랐던 걸까?
황실의 장부 깊숙한 곳에서 발견된 사라진 전쟁자금.
내 이름으로 작성된 적 없는 비밀 계약서.
그리고 처형 전날 사라진 단 한 명의 증인.
모든 단서는 한 가지 질문으로 이어진다.
전생에서 정말 나를 죽인 사람은 누구였을까.
나는 살아남기 위해 돈을 모았다.
복수하기 위해 권력을 샀다.
그리고 다시는 황제를 사랑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황실이 무너지기 시작한 날,
카시안은 수많은 귀족 앞에서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왕좌도 황위도 필요 없다.”
그가 처음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은 얼굴로 말했다.
“세레나, 이번에는 나를 버리지 마.”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이번 생에서 바뀐 것은 나 하나가 아니었다.
어쩌면 카시안도 전생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가 기억하고 있다면,
내 처형에 대해 아직 말하지 않은 진실이 있다는 뜻이었다.
사랑 때문에 죽었던 황후가 다시 돌아왔다.
이번 목표는 황후가 되는 것이 아니다.
황실의 빚을 사고,
귀족들의 약점을 사고,
마침내 제국의 운명까지 사는 것.
이번 생에는 누구에게도 버림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황제보다 내가 더 비싸질 테니까.
300권의 책을 써온 작가 백지원입니다.
숫자로만 보면 꽤 많은 책을 쓴 사람처럼 보이지만, 저는 아직도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때마다 설렙니다. 첫 문장을 쓰기 전에는 늘 조금 떨리고, 인물의 마음이 제 안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면 저도 모르게 그들의 선택을 따라가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많이 썼지만, 여전히 한 편의 이야기를 대하는 마음만큼은 처음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며 겪는 후회, 상처, 사랑, 선택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조금만 더 나를 믿었더라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상처받으면서도 왜 우리는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걸까.
이런 질문들이 제 이야기의 시작이 됩니다.
《이혼당한 황후가 제국을 샀다》 역시 그런 마음에서 출발했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 다시 한 번 기회를 얻게 된다면, 과연 어떤 삶을 선택할까 생각했습니다. 예전처럼 사랑받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것인지, 아니면 이번에는 자신의 마음과 삶을 먼저 지켜낼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세레나를 완벽한 사람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랑 때문에 흔들리고, 믿었던 사람 때문에 아파하고, 뒤늦게 후회하기도 하는 사람. 하지만 결국 자신의 두 발로 다시 일어서서 “이번에는 내가 내 인생을 선택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그리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세레나처럼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단두대까지 갈 정도의 극적인 사건은 없더라도, 누구에게나 마음속에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 하나쯤 있으니까요. 그때 하지 못한 말, 놓쳐버린 사람, 포기해버린 꿈, 너무 늦게 알게 된 나 자신의 소중함까지.
하지만 현실에서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야기를 씁니다.
소설 속에서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한 번 무너졌던 사람이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그리고 누군가 이 이야기를 읽다가 아주 잠깐이라도 자신의 삶을 떠올리며 “나도 아직 늦지 않았구나”라고 느낄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300권을 쓰는 동안 제가 가장 많이 배운 것은 화려한 문장보다 오래 남는 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독자 여러분과 멀리 떨어진 작가가 아니라, 옆자리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처럼 글을 쓰고 싶습니다.
힘든 날에는 잠시 쉬어갈 수 있고, 답답한 날에는 통쾌하게 웃을 수 있고, 외로운 날에는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은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이번 책도 그런 마음으로 썼습니다.
세레나가 두 번째 삶에서 자신의 운명을 다시 써 내려가듯, 이 이야기를 읽는 여러분의 오늘에도 작은 용기 하나가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랑받기 위해 나를 잃지 않아도 된다는 것.
한 번의 실패가 내 삶의 결말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결국 내 인생의 마지막 문장을 쓰는 사람은 나 자신이라는 것.
그 마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300권 작가 백지원입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도, 여러분이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오래 기억할 수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